참 곱소 고려 글이 아이고 참 곱소
치약을 묻힌 붓으로 빨간 천에 그의 이름을 쓴다
신 일리야 한글로, 고렷 글로 또박또박, 붓을 치약(1)에 다시 묻히는데
까레이스키들, 박수 소리 참말로 곱소!
평생 노처녀로 늙은 최 이나와 까레이스키 네 가족만 사는 동네에 상사(2)가 났다
알루미늄 공장에 다니는 아제와 간질인 노총각 아들이
쌀을 넣고 염을 하기 시작했다
허름한 병실 간암 환자, 신 일리야 상사 났소
누더기 군용 담요, 둘둘 말아 병실 밖으로 버려지는 애꾸눈 아제
유족들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숨 거둔 것 확인 못 하고
박 마야, 박 스비에타, 신 따냐 물통 베개 걸레 둘둘 말아
평평한 침대를 만들어 차에 싣는다
비는 황톳길에 퍼붓고 비포장도로의 저승길을 밤새 달려서
전기도 없는 마을에 죽음이 도착했다
마을은 우리의 울음으로 폭탄처럼 천둥이 터진다
고운 한글 이름 쓴 천으로 아제를 덮었다
이제는 기양 조국의 산처럼 강처럼
그렇게 조국에 붙어서 살라고 울음으로 달래며
우리는 아제를 모슬렘 땅, 한 귀퉁이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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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감 대신 그들은 치약을 쓴다. 가난은 모든 대용품을 가능케 한다.
2) 고려인들은 죽음을 상사라고 한다.
지은이: 박연숙- 한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기하성(순복음) 파송선교사, 모슬렘들과 고려인 교회개척사역과 교육사역을 하다, 현재 안식년을 맞아 고향인 광주에 돌아와 잠시 쉬던 중 광주고려인마을을 섬기며 국내 정착한 고려인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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