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돕고 산다는 것이 인내와 희생이 따르는 것은 알지만 요즘은 좀 버거운 느낌이 들어가고 있다.
밤낮없이 걸려오는 전화 벨소리는 늘 가슴을 졸이게 한다. 또 어떤 전화일까? 망설이다 전화를 받으면 어김없이 서투른 한국말로 "도와주세요" 라고 말한다.
내용인즉 일하다 다쳤는데 사장님도 없고 많이 아프다는 것이다. 그것도 늦은 밤 막 잠이 들려는데 걸려온 전화를 받다니 후회막급이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는 일어나 달려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1998년 영어교사로 근무하던 중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병든 외국인근로자와의 인연으로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를 열게 되었다. 그 후 쉴 곳이 필요한 수많은 이방인이 이 센터를 거쳐 갔다.
하지만 국적도 다양하고 성격도 다르기에 좋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노상방뇨에 술 먹고 싸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애까심' 되는 자가 빨리 떠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또 병들어 죽어가는 외국인을 등에 업고 병원을 전전하며,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여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속이 타들어가는 날이 많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 '나눔방송'을 열었다. 그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난감한 문제를 알릴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열로 신음하던 가나 출신 프랭크 씨가 쉼터를 찾아왔다. 그냥 둘 수 없어 인근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그저 감기려니 생각했지만 도착하자마자 프랭크 씨는 의식을 잃고 말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런데 병원비는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수천만원으로 올라가고 말았다.
병원비 마련이 쉽지 않아 절박한 심정으로 나눔방송에 기사를 작성한 후 매일 아침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링을 시작했다. 포털사이트를 통해 날마다 보내는 프랭크 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언론기관이 동참하게 되었고 사연을 보고 후원금을 보내주는 분이 많아지자 힘을 얻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변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은 이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프랭크 씨는 사망했지만 후원자들이 마음을 모아 4000여 만원에 달하는 병원비와 장례비를 조달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눔방송이 입소문을 타게 되자 이주민 자신들이 나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사연을 보내왔다. 나는 기사를 정리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반응이 일어나 많은 도움을 받기에 이르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도 알게 되었다.
도박판의 판돈이 결국에는 한두 사람에게 몰리듯이 아무리 균등분배를 하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있다 해도 가난한 이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가난한 이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없는 세상은 지옥과 같을 것이므로 비록 힘들고 인내는 필요하겠지만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나누는 세상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간다고 나는 믿는다. 시대가 새로워지고, 생명력을 가진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가난한 이, 외국인 나그네, 이주아동, 특히 버림받은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계속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이천영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대표ㆍ새날 학교 교장, 나눔방송대표
|